2008년 4월 15일
따뜻한 봄날씨와 화창한 하늘을 보면서
자금성을 4회차 관광을 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고궁의 후문에서부터 들어가 고궁 박물관에 전시된
청나라 황실에 관한 자료들을 보고 정문으로 방향을 잡아 역으로 구경을 하였다.
이렇게 견학한 것은 처음이다.
아예 한국에서 준비해간 운동화를 신고 가벼운 차림으로 걸어가는데
웅장한 건축물이 반복이 되면서 나타나는 광경에 사뭇 질리는 기분이었지만
처음으로 동반한 마누라 때문에 참고 땀을 흘리면서 정문까지 관광을 마쳤다.
고궁은 청나라 이전의 명나라 태조인 주 원장이가 건축한 건물로서
비교적 정비가 잘되어 있으며 중국 정부의 중요 부서들이 자금성 곳곳에서
사무실로도 이용을 하고 있다.
청나라가 중국을 다스릴 때 별도로 황궁을 건축하지 않고
명조 때 건물 그대로를 사용한 것이다.
고궁 박물관 에 들어가 보니 명조 때 유물들은 전혀 없고
청조 때 황실의 유물들과 사진과 그림들만 전시가 되었는데
인상 깊었던 것은 황실의 황비 및 후궁들이 사용햇던 화장품들이었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청조말엽 외국에서 들여온 화장품들의 용기와 종류가 나의 큰 관심 거리였다.
내용물들이야 당시에는 수은이나 납이 다량으로 함유된 제품들이기 때문에
이것을 장기간 사용한 황후들의 얼굴은 백납같았을 것이다.
언젠가 황족의 후손이 내 친구로 있어 청나라가 일본에게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망했다는 것이
의아하다라고 말하자 당시 조선말 청나라가 원 세계를 내세워 조산에 군대를 보내어
지원하지 않았다면 일본에게 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답변을 한다.
이것도 청조가 멸망을 재촉한 이유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수긍을 한 적이 있다.
중국 북방 심양에서 청조를 일으켰던 여진족(금나라)의 후손들은
한족과 동화가 되어 지금은 소수 민족이 아닌 한족이 되어
찾을 길이 없지만 새삼 고궁의 박물관을 보니 회한이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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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황하 1,2집 - 노무라 소지로